[담장을 꽉 잡아라 여주야 바람불면 쓰러져] - 여주를 보고 지은 17자 시
지난 달에 오두막 담장 밑에 여주 두 모종을 심었다.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하도 힘들어 보여 지지대를 세워 주었다. 지지대가 미끄러워서인지 더덤이가 잘 잡지 못했다. 급기야 빨래집게까지 동원해서 겨우 담장을 덮고 있는 기와를 잡는데 성공했다. 자세히 보니 노오란 꽃도 두 송이 피었다. 올 여름에는 담장을 타고 무성한 덩굴을 이룰 것 같다.
고대시대의 선각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세상을 향해 '잠들어 있는 사람들' 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에도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면에서 꿈을 꾸고 있다. 마음속에 수많은 상념이 지나가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몽유병 환자처럼 행동한다.
자각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 순간에 완전히 의식이 깨어 있는 것을 말한다. 그 순간에 현존한다.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에 현존한다면 분노는 불가능하다. 분노는 깊이 잠들어 있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
이 잠은 무엇인가? 이 잠은 어떻게 오는가? 에 대해 알아보자
마음은 항상 과거나 미래에 가 있다. 마음은 현재에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현재에 있을 때 마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은 사념(私念)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재에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가? 과거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있다. 과거는 이미 기억이 되었으며 마음은 이 기억을 다룰 수 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에 대해 꿈꾸는 것은 가능하다. 마음은 이렇게 두 가지를 할 수 있다. 마음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그곳에는 마음이 움직이기에 충분한 공간이 있다. 광활한 공간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들어갈 수 있다. 또한 마음은 미래로 들어갈 수도 있다. 미래에도 무한한 공간이 있다. 끝이 없다. 무한정으로 상상하고 꿈꿀 수 있다. 그러나 현재에 어떻게 마음이 작용할 수 있겠는가? 그럴 공간이 없다. 마음이 움직일만한 공간이 없다. 현재 안에 존재할 수는 있어도 생각할 수는 없다. 생각을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 사념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현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하는 순간 이미 그 순간은 과거가 되어 버린다.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고 말한다 하자. 이때 이미 태양은 과거가 되었다.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말할 공간조차 없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말하는 순간 경험은 이미 과거가 되었다. 마음은 기억 속에서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태양이 떠오르는 바로 그 순간에 생각할 수 있는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존재할 수는 있지만 생각은 불가능하다. 존재할 공간은 있지만 생각할 공간은 없다.
정원에 핀 꽃을 보고 "참 예쁜 장미꽃이다" 하고 말한다. 이때 장미꽃과 함께 존재하지 않는다. 장미꽃은 이미 기억이 되었다. 장미꽃과 동시에 현존할 때, 그때 생각이 가능한가?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가?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가?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 충분한 공간이 없기 때문에 둘로 존재할 수도 없다. 오직 하나로 존재할 공간밖에 없다.
깊은 현존 속에서 지켜보는 자는 장미가 되고 장미는 지켜보는 자가 된다. 순간에 현존하지 못할 때에는 지켜보는 자의 생각에 불과하다. 장미꽃 또한 지켜보는 자 마음속의 생각일 뿐이다. 그러나 생각이 없을 때에는 누가 꽃이며 누가 관찰자인가? 관찰자가 관찰의 대상이 된다. 돌연 경계가 사라진다. 갑자기 지켜보는 자가 장미 속으로 들어가고 장미가 지켜보는 자 속으로 들어온다. 장미와 지켜보는 자는 둘이 아니다.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지켜보는 자가 무념(無念)의 상태로 장미꽃과 함께 존재할 때 거기에 대화가 있다. 대화 아닌 대화가 이루어진다.
'깨어있음' 이란 전적으로 순간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순간에는 과거를 향한 움직임도 없고 미래를 향한 움직임도 없다.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체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움직임, 깊이로 들어가는 움직임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하나의 사념에서 다른 사념으로 움직일 때 시간의 세계에 머문다. 이를 수평적 차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념이 아니라 순간 속에서 움직일 떼 영원의 차원으로 들어간다. 이를 수직적 차원이라고 한다. 수평적 차원에서는 동기에 의해 움직인다. 돈, 명예, 권력 등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렇게 특정한 동기에서 비롯된 활동은 잠에 불과하다.
동기 없는 활동이 깨어 있음이다. 깨어 있을 때 활동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기 때문에 움직인다. 이 활동이 곧 삶이기 때문에 움직인다.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삶이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에 활동하는 것이지 다른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 목적도 없다. 무엇인가 성취하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사실 아무데로도 가지 않는다. 그저 에너지 안에서 기뻐할 따름이다. 외부적인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 활동 자체가 고유의 가치를 갖는다. 이것은 외부에서 주입된 가치가 아니다.
온 세상, 이 존재계, 대우주 전체가 영원 속에서 움직인다. 오직 마음만이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 존재계는 깊이와 높이 속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마음은 앞뒤로 움직인다. 마음은 수평적으로 움직인다. 이것이 잠이다. 수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이 깨어 있음이다.
현재 순간에 부재하는 것,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지 않고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이것이 잠이다.
시간, 생각, 마음은 수평적 차원이다. 영원, 의식, 깨어있음(각성)은 수직적 차원이다. 수평적 차원에서 죽어라. 그러면 수직적 세계에서 부활할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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