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꽃 그 화려함에 넋을 잃었구나 아뿔사] - 작약꽃을 보고 지은 17자 시
내가 거처하는 오두막 화단에는 작약꽃이 한창이다. 꽃 모양이 모란꽃과 매우 닮았다. 풍성하고 검붉은 잎이 노오란 수술을 안고 있는 모습이 똑 같다. 그러나 모란꽃은 나무에서 피어나고 작약은 풀에서 피어난다는 점이 다르다. 이 두 꽃은 아름다운 꽃의 대명사로 여겨 동양에서는 미인을 작약꽃이나 모란꽃에 빗대기도 했다고 한다. '서면 작약, 앉으면 모란, 걸으면 백합' 이라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 오두막에는 작약과 장미와 패랭이의 시간이다. 모두 붉은 색을 띄고 있는 점이 같다. 오월의 태양에 더욱 빛나는 색이다. 보는 위치에 따라 그 붉음의 정도가 달라진다. 누구나 반할 만한 화려함을 가진 꽃들이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나무들은 이리저리 흔들 거린다. 포도송이 마냥 주렁주렁 하얗게 매달린 아카시아꽃은 온 사방에 달콤한 향기를 뿌린다. 엄지 손가락 만하게 커버린 매실과 살구는 오월의 태양이 따가운 듯 이파리 속에 살포시 숨어든다. 조롱조롱 매달린 버찌는 점점 붉은 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얼마 후면 검붉게 될 것이다. 육월 쯤 되면 매실과 버찌와 살구 그리고 자두를 딸 수 있을 것이다. 맛있는 효소를 담궈보고 싶다.
이번 토요일에는 각시와 함께 아카시아꽃으로 효소를 담궈야겠다. 너무 향이 좋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깝기 때문이다. 아카시아나무가 대를 잇는데 지장이 없도록 적당한 양만 취할 것이다. 내가 사는 근처에는 산딸기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금 하얀 꽃이 한창이다. 얼마 있지 않아 붉고 탐스러운 산딸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두막 주변에는 고사리도 있다. 새 순이 한창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잎이 피기 전에 꺽어야 한다. 오동통통한 고사리를 꺽을 때 느끼는 손맛은 봄이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오늘 저녁 밥상에는 가죽나무 새순과 엄나무(개두릅) 새순을 올려야겠다. 부드러운 새순을 된장에 찍어 먹으면 온 봄을 다 먹는 기분일 것이다. 당귀 새순도 있다. 이 세 가지만 먹어도 백 살은 거뜬히 살 것 같다. 나는 참 복이 많고 행복한 놈임에 틀림없다.
내일은 어린이 날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1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 선생이 제정했다고 한다. 종래의 유교 도덕에 얽매여 있던 어린이들을 아름다운 감성으로 해방시키고자 이 날을 제정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감성적 해방은 일제와 오래된 관습에 의해 좌절되었다고 한다.
오늘 이천이십이년 오월은 어떤가? 백 년 전에 이루고자 했던 선생의 뜻이 이루어졌는가? 아직도 우리는 아이들을 유교 도덕에 가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을 가문과 국가에 가두고 있다. 하나의 자유로운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자꾸만 틀에 가두어 가문과 국가의 도구로 만들고 있다. 사람들을 지배하고 재물을 모으는 도구로 양성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교육 시스템이다. 권력을 얻고 재물만 얻으면 삶이 성공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교육 받은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사람들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괴물로 변한다. 더 나아가 대우주, 대자연에 도전하는 무모한 행동을 한다. 이것이 현재 이 세상이 처한 상황이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부모 세대들이 깨달아야 한다. 부모는 부모의 삶이 있고 아이는 아이들의 삶이 있다. 모든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어떤 이유로도 간섭하거나 구속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지식교육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과학만능주의 교육을 버려야 한다. 지식교육과 과학만능주의는 대우주, 대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멸망으로 이끄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대우주, 대자연을 알게하는 교육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남의 경험을 주입해서는 안 된다. 지식과 과학교육은 남의 경험이다. 아이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대우주, 대자연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대우주, 대자연을 알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직접 겪은 경험에 의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세대들이 먼저 대우주, 대자연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의 모든 지식, 사상, 관념 등을 버리고 순수한 상태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붓다가 말한 깨달음이요 예수가 말한 부활인 것이다.
부모 세대들이여! 깨어나라. 부활하라. 그리하여 이 땅의 아이들이 모든 간섭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날개를 활짝 펴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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