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비 소리에 맨발로 뛰쳐나가 더덩실 춤을] - 비와 함께 지은 열일곱자 시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내린다. 무려 두 달 여 만에 내리는 비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맨발로 뛰쳐나와 온 몸으로 비를 맞는다. 너무도 시원하고 상쾌해서 나도 모르게 더덩실 춤을 춘다. 나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만물들도 춤을 추는 것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책, 선생님들, 학교, 단체 등을 통해 많은 지식을 긁어 모은다. 이렇게 긁어 모은 것을 '지식'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식은 기억의 일부가 될 뿐 자기 자신의 존재에게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지식은 가슴을 건드러지 못한다. 내적 존재가 자극받고 변형되지 않는 한 지식은 무지와 다르지 않다. 이것은 일상적인 무지 보다 더 위험하다. 보통의 무지한 사람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안다고 착각한다. 물론 지식인들은 많은 것을 안다. 그러나 깊은 곳에서 보면 아무것도 모른다.
진정한 앎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더 많은 존재를 얻는 것이다. 지식인들은 계속해서 자기자신을 기만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앎이 아니라 정보에 의존한다. 실존적 경험을 통해 얻어졌을 때 비로소 진정한 지식이 된다. 도서관에 가서 사랑에 관한 정보를 모을 수 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많은 지식을 모을 수 있다. 삶의 여러 방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자신이 직접 사랑에 빠져 본 경험이 없다면 이런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한 송이 꽃이 피어나는 데 그저 생각하고 말하는데 그친다. "참으로 예쁘고 아름답다" 고 말하지만 그 예쁨과 아름다움을 놓치고 만다. 진짜 예쁘고 아름답다면 말을 하지 못한다. 침묵하게 된다. 무엇인가 엄청난 것을 느낄 때 우리는 감탄하고 놀란다. 그 순간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말은 천박한 것이다. 그 순간에 말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말을 함으로써 그 순간을, 그 삶을 놓친다.
침묵해야 한다. 그 순간을 먹고 마셔야 한다. 그 꽃이 내면에 피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 때 꽃과 하나가 된다. 꽃과 직접 만나야 한다. 생각하거나 말하지 말아야 한다. 기억 속에 내장된 꽃에 대한 정보를 끌어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꽃인지 알게 된다. 이 때 그 앎을 이론화 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경험은 한없이 넓은데 이론은 너무나 좁다. 지식인은 계속 생각하고 말하지만 존재하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심화시킨다. 이렇게 경험을 심화시키다 보면 자신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지금까지 부모와 학교, 사회,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된 자아가 사라진다.
이 넓고 깊은 대우주, 대자연을 머리로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모든 노력이 헛된 일이다. 머리를 통해 보면 안된다. 머리를 버리고 직접 봐야 한다. 그러면 지켜보는 자 또한 넓고 깊은 존재가 된다. 이 말은 마음속에 아무 생각도 없이 완전히 깨어 있는 의식으로 보라는 뜻이다. 이론화시키지 말고 직접 삶을 살라는 뜻이다.
'느낌한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리수 앵두 산딸기 딴다 새들은 지저귀고 (0) | 2022.06.10 |
---|---|
비 온후 고요한 대숲을 스치는 작은 새소리 (0) | 2022.06.08 |
임을 기다리다 검게 타버린 꽃이여 흑장미 (0) | 2022.06.03 |
엉겅퀴 꽃을 지키려고 가시가 엉성스러워 (0) | 2022.06.02 |
다알리아꽃에 봄은 닫히고 여름이 열리네 (0) | 2022.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