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기다리다 검게 타버린 꽃이여 흑장미
[임을 기다리다 검게 타버린 꽃이여 흑장미] - 흑장미를 보고 지은 열일곱자 시
흑장미가 핀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검붉은 색을 띄는 장미다. 오두막 화단에 한 그루가 있는데 다른 장미에 비해 많이 피지 않는다. 올해도 딱 한 송이가 피었다. 특히 흑장미는 꽃잎이 겹겹이 쌓여 있고 잘 펼쳐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완전히 펼쳐보지 못하고 시들어 떨어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삶 자체가 모순을 통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고 논리적으로 풀려고 하기 때문에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삶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도처에 모순 덩어리다. 그러므로 이 모순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 다만 논리적인 마음이 이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순(矛盾) : 창과 방패라는 뜻으로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하지 아니함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은 이 모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미움을 통해 사랑을 얻는다. 분노를 통해 평화를 얻는다. 일을 통해 휴식을 얻는다. 질병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다. 죽음을 통해 삶을 얻는다. 이처럼 모순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대립을 통해, 반대되는 것과의 긴장을 통해 모든 것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사랑은 계속되는 허니문의 관계를 말한다. 허니문이 끝나고 모든 것이 안정되면 그것은 이미 죽은 사랑이다. 안정된 모든 것은 죽은 것이다. 삶은 안정이 없는 움직임을 통해 유지된다. 살아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립되는 것들 사이에서 이동하는 것을 뜻한다.
어제는 나를 사랑하던 사람이 지금은 내게 화를 낸다고 하자. 내가 어제에 집착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어제 그대는 나를 사랑했다. 그대는 항상 나를 사랑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러는가?"
우리는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삶이 피곤하지 않다. 어제 그대가 한 말, 항상 나를 사랑하겠다던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저 그대의 기분이 그랬을 뿐이며 나는 그대의 기분을 과신했다. 하지만 이제 그대의 그 기분은 사라졌다. 그렇게 말했던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간 것은 간 것이다. 이제 그 일에 대해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사랑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불행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화한다. 모든 것이 움직인다. 아무것도 정체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집착하면 안 된다. 집착하는 순간 실체를 놓치기 때문이다. 이 집착이 문제를 일으킨다. 실체는 변하는데 그것을 고정시키려고 하는 것 때문에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집착하면 스스로 지옥을 만든다. 집착이 지옥이다. 집착하지 않으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기분과 함께 움직이고 그 기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변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불평불만을 잊을 수 있다. 삶이란 본래 그렇게 변하는 법이다. 만물이 그런 식으로 존재한다. 아무리 대항해도 '변화' 라는 삶의 법칙을 바꿔 놓을 수는 없다.
삶은 서로 대립되는 것 사이에서 움직인다. 이것이 삶의 비밀이다. 그 비밀을 받아 들이면 그 삶이 바로 천국이다. 사랑이 오면 오는 것이고 가면 가는 것이다.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가는 것을 잡을 수 없다. 다만 거울이 되어 지켜볼 뿐이다. 사랑과 미움은 변화무쌍한 기분일 뿐이며 계절처럼 변한다는 것을 거울은 안다.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은 대립된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선택하면 어느 한 쪽에 집착하고 동일시될 것이다. 그 집착과 동일시가 모든 고통의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