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한줄

다알리아꽃에 봄은 닫히고 여름이 열리네

slowmrlee 2022. 5. 3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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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알리아꽃에 봄은 닫히고 여름이 열리네] - 다알이아꽃과의 이야기를 담은 열일곱자 시

자기자신을 아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본래는 이렇게 어려워서는 안된다. 이것은 가장 쉬운 일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그 첫 번째 이유는 '자기에 대해 알지 못함' 에 너무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에 의해 인정받는 삶 전체가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함' 에 기초하고 있다. 대부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살아간다. 국가와 사회가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와 사회에 위험한 일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는 국민들을 혁명가가 아니라 로봇처럼 만들려고 한다. 로봇을 다루는 것은 쉽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국가와 사회는 지배를 원한다. 특권층(지배자층)은 국민을 지배하고 억압하고 착취한다. 그들은 국민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 붓다, 예수, 노자, 장자, 헤라클레이토스..... 가 외친 말이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한 거짓된 이미지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거짓된 이미지에 너무 많은 투자를 했다. 누구나 자신을 고상하게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 그렇게 허구적인 개념을 갖고 있다. 무슨씨족 몇대손, 국회의원 누구누구, 장차관 누구누구, 판검사 누구누구, 의사 누구누구, 재벌총수 누구누구와 같은 거짓되고 공허한 이미지를 만드는데 너무 많은 공을 들인다. 그 거짓된 이미지가 진짜 자기 자신인양 착각하고 있다. 이것이 문제다. 이 거짓된 이미지를 벗겨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이 거짓된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수많은 오점이 들어날 것이다. 한꺼풀만 벗겨 보면 질투와 소유욕, 증오심, 분노 등 온갖 욕망들로 가득차 있음을 볼 것이다. 자기 자신을 매우 아름다운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조금만 내부를 들여다 보면 추악함 뿐임을 알 것이다. 그래서 즉시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것이다. 자신의 추함과 마주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 추함을 통과해야 한다. 내부에는 아름다운 존재가 있다. 내부 중심에는 지식, 문명화되고 세뇌되고 교육받은 존재가 아니라 야생화 같은 자연의 모습 그대로의 존재가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존재는 바깥에 있지 않다. 그것은 중심에 있다. 그리고 중심에 도달하려면 바깥을 통과해야 한다. 온갖 부정적인 면들, 증오, 질투, 탐욕 등을 통과해야 한다.

바깥층은 국가와 사회의 축소판이다. 바깥층에서는 모두가 나폴레옹이고 히틀러이다. 징기즈칸이고 후세인이다.  세상의 모든 정치가와 미친 사람들이 바깥층을 형성하고 있다. 침략과 폭력, 억압, 노예 등 모든 역사가 바깥층을 이루고 있다. 이 바깥층에는 세상의 모든 역사가 담겨 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역사를 통과해야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다. 이것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 역사는 몸과 마음, 두뇌의 세포 하나하나에 깊이 박혀 있다. 과거 전체가 함께 있다. 이 과거를 통과해야 한다. 고통이 뒤 따른다. 그러나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의 십자가에 깃든 뜻이다. 예수는 그 고통을 통해 부활을 얻었다. 고통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을 얻었다.

사람들이 붓다, 예수, 노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실행에 옮긴다.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먼저 그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말 속에는 진리가 있다. 이 진리를 알게 되면 행복을 얻는다. 영원한 행복, 더 없는 행복, 지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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