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한줄

툇마루 쪽에 호미질하는 소리 삭삭 사그삭

slowmrlee 2020. 9. 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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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내일이면 온다는데 바람 한 점 없고 햇빛은 구름에 가려 어둠만 무겁게 내려앉은 고요한 한나절.

툇마루 쪽에서 들리는 아내의 호미질 소리가 그 고요함을 깬다. 삭삭 사그삭.

쉬는 날이면 마당이며 텃밭을 돌아다니며 호미질 하는 아내다. 팔다리가 절린다면서도 틈만 나면 나가서 집안 일을 한다. 무능한 남편 탓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음의 평온" 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마음이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먹고, 자고, 입는데 대한 걱정 없이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병들지 않고 남들과 경쟁하지 않으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인가?

이것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을 것 같다.

우리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이 두 가지가 충돌하고 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서 늘 갈등하고 있다.

육신의 세계와 의식의 세계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배고픔은 육신에 속한다. 그것은 육신의 요구다. 그러나 의식에는 배고픔이 없다.

 

잘 관찰해 보면 존재는 육체와 의식이라는 두 개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육체는 배고픔을 느끼고 갈증을 느낀다. 그러나 육체 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의식, 진짜 나)은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지 못한다. 이 의식은 단지 육체가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지켜보는 구경꾼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지켜보는 구경꾼이 되어야만 마음의 평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진짜 나는 육체를 이루는 눈도 아니고 귀도 아니며 손도 아니다. 진짜 나는 이 육체의 모든 것을 지켜보는 구경꾼이 아닐까.

눈은 외부에 있는 것은 볼 수 있지만 내면에 있는 것은 볼 수 없다. 귀는 바깥의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안의 소리는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안으로 들어가면 구경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육체는 만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 자신이 아니다. 손은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의식을 만질 수 없다.

눈을 감고 내면으로 들어가 순수한 존재와 만나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아닌 태어날 때의 그 순수한 나를 만나

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후 부모와 학교와 사회와 국가로부터 길들여진 나를 벗어 던져야 한다.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해도 되고 저것은 해서는 안된다." 와 같은 규율, 제도를 만들어 놓고 그 틀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길들여졌다.

규을이나 제도를 잘 따르면 성공한 사람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사람이 된다. 그것이 사회, 국가라는 모습이다.

처음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와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날 때의 모습을 보라. 누구나 할 것 없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순수 맨몸으로 이 세상에 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날 때 역시 빈몸으로 가지 않는가?

사회와 국가가 시키는대로 잘 따라서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라는 것 어느 한 가지라도 가져가는 사람 보았는가?

결국 모든 사람이 남기고 가는 것은 아무 쓸모없는 이름 석자뿐이다.

부처도, 예수도, 마하비라도, 노자도, 장자도 역시 죽으면서 이름만 남겼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깨달은 사람, 성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금 그들을 신격화하고 큰 건물을 지어 숭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인정하면서 그들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을 이용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이 되기를 빌 뿐이다. 그들이 어떤 삶을 통해 끝없는 행복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다.

그들 모두 하나같이 공통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끝없는 행복을 주는 하늘나라, 천국, 극락세계가 따로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 삶이 바로 하늘나라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단 한 시라도 지금 여기에 있지 못한다. 아름다운 꽃이 바로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고 딴 생각에 빠져 있고, 아름다운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지나가건만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다.

자식걱정, 직장걱정, 돈걱정..... 헤아릴 수 없을만큼의 걱정으로 가득차서 순간순간 주어지는 찰나를 즐길 수 없다.

자식, 직장, 돈, 명예, 권력... 은 우리가 죽을 때 절대 가져갈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으면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여기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즐기는 것이 아닐까? 죽는 그 순간까지 그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다면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도 놓치지 않고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부처와 같이 모든 깨달은 이는 한결같이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삶도 없고 죽음도 없는 영원한 삶이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오로지 글쓰는 일을 즐기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다시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입사지원서를 여러군데 냈는데 왜 한 군데서도 연락이 안 오지" , 여러 생각들이 떠 올랐다가 사라진다.

걱정을 해 봐도 고민을 해도 어차피 안될 일인데 왜 쓸데없는 짓을 할까. 자연의 법칙에는 때가 있다. 그 걱정하는 순간순간을 온전히 즐기자. 태풍이 지나가면서 흔드는 대나무숲 소리, 닭이 우는 소리, 불어난 계곡물 소리, 풀벌레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가만히 듣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맑아진다.

이런 순간순간을 온전히 즐기다 보면 될 것은 되고 안 될 것은 안되면서 지나갈 것이다. 자연의 법칙이 그러한데 어떻게 보잘것 없는 사람의 힘으로 이루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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